2001 Michel Nuridsany

 

머리

 

 

목탄과 연필로 그려진 유혜숙의 아름답고 감성적인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살짝 빗겨간 모노크롬의 변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분이 안될 정도로 촘촘히, 가는 선들로 채워진 깊은 검정이, 위론 단순한 곡면을 , 가운데, 또는 옆으로는 어렴풋한  가르마를 하고,  그림자 베일과도 같이 화폭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며 아마도 모노크롬과는 다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젊은 한국 작가의 그림에서 내가 끌렸던 것은, 그러니까 회화와 데생의 중간이라는 것, 인물화를 그리되 뒤에서 보여진 것이라는 것, 정묘함과 세련됨, 관능성의 산재함 등 그의 작업의 모든 것에 침식해있는 모호한 특성 때문이다.....

유혜숙은 그녀의 작품들을 « 씨의 발아 »라고 설명한다.  즉 머리채는, 뚫고 나오려는 충동과 자체적 부식토를 지닌 식물과 같아서, 우리의 기억과 욕구와 함께 자라고, 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또한 그녀의 존재를 씨알로 비유 한다 : « 죽지 않는 씨 하나를 심기 위해서, 그리는 대상이, 그리고 더불어 내 자신까지 고갈되길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 ».   우리에겐, 감미롭도록 신선하고, 매혹적이며 진기하게 사로잡는 그녀의 작품 자체에 비해,  동양인의 시각 안에서 조심스레 보는 방식, 말하는 방식이 느껴진다.

 

그의 그림에는 어두움이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그 어둠에는 우리가 초현실주의의 어떤 작품이나 모란디의 그림에서 매료되듯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빛 - 빛을 발하는 어둠 - 이 있다. 신비한 침묵이 드리워진 이런 모든 것은 이론으로는 이해가 안되며 신비한 체험 같은 것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대로 되어지지도 않을뿐더러 길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브람 반 벨드가 말했듯이 ,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오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러기에 유헤숙은 “제한된 방법으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거나 “빈곤함을 개의치 않고 즐긴다” 고 얘기하는 것일까?

 

그녀의 작업에서 탁월한 것은 극도의 단순성이다. 얼굴이 머리채로, 그 머리채는 검게 펼쳐진 화면이 되어 붓과 목탄과 연필이 거기에 숨쉬어진다.                                                     

 

미셸 뉘리쟈니, 개인전 “머리” 도록 서문, 브뤼노 들라뤼 화랑,빠리,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