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Jean-Louis Poitevin

 

시간의 가시

 

 

방향 잃은 바람에 의해 쓸려진 드넓은 회색 풀밭처럼, 수많은 선들이 춤 추는 유혜숙의 검은 면들은 꿈처럼 우리를 감싼다.  그 작품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것들이 이끄는 대로 그 정체를 확인하려 하는 함정에 빠진다.  그리고는 작품의 주제인 머리채, 여기선 수건이 우리의 상상을 사로잡아 더 복합적인 길로 몰아간다.

 

유혜숙은 오래 전부터 흑연으로 작업 해왔다. 그녀의 작품들은, 극도의 정밀함과 잠재된 격렬함, 그리고 우리의 몸이 상처나 애무를 기억하듯 그 화폭에 기록된 수없이 반복된 제스츄어의 한없는 부드러움, 이런 감각들로 우리 안에 밀려 들어온다. 이때 깨닫는 것은, 전율할 정도로 엄청난  흔들림을  느끼게 하는 이 모든 뉘앙스와 운동감, 선들과 주름들을 낳기 위해, 매번 작가가 자신의 몸짓을 조절해야 했다는 것이다.

 

오랜 동안 그녀는, 연필로, 검정색 땋은 머리의 형체를 탄생시키는 시기를 거쳐, 망각의 먼지를 씻어내는데 사용된 것처럼 어두운 수건들, 삶의 속내를 거의 수줍어하듯 조심스레 덮는 형용할 수없이 주름 잡힌 휘장과 장막의 수건들을 그리며 오늘, 시간의 비밀을 캐고 있다.

 

그리고 이 그늘의 이면에, 주로 빨강 또는 분홍인 유색의 또 다른 얼굴의 동적인 세계가 태어나, 우리의 내부는 또 다른 시작으로 진동되게 된다.  2003년이후로 유혜숙은, 검은 가시들이 돋은, 분홍 또는 적색의 띠를 주제로, 주로는 그 자체를 둥글게 말고, 가끔씩은 접거나 주름잡기도 하는 독특한 기법을 시작했다. 이 기법의 특이한 점은, 초기에 이 주제를 공간 안에서 조각처럼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 가시 들은 검은 실리콘 소재로 되어 있는데, 때로 이 검정과 분홍으로 되어 둥그렇게 말려있는 형상들은,  원래 피부에 의해 감추어져 있는 우리 몸의 은밀한 부분들처럼 보여 지기도 한다.  단지 여기서는, 그것들을 자아와 자신의 육체(chair) 사이의 싸움에서 얻은 트로피처럼 드러내기 위해 우리의 몸으로부터 추출한 것 같다. 왜냐하면, 육은 우리가 가진 것들 중의 하나이나 동시에 그것이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녀는 이 조형작품들을 사진 찍어 차가운 유광의 이미지로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은밀함은 우리를 매혹 시키나 소요는 일으키지 않는 마법처럼 매끄러운 문명 세계로 합류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자명함에 반박하듯, 데생과 판화를 통해서도 이 주제를 전개시켰다.  이렇게 해서, 미지에 대한 경이가 우리 안에 깨어나고 이 감추어 졌던 세계가 드러나며 우리를 사로잡는 매혹으로 육체의 모든 힘이 다시 나타나게 된다.

또한 이 주제 안에서 서양 기독교 성화의 몇몇 고전적인 작품들과 연결 시켜 보지 않을 수 없다. 미술사의 큰 맥락에서 분명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그녀가 육의 문제와  육신화(incarnation)의 미스터리에 대해  질문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빨강, 분홍과 검정 사이의 균형을 통하여, 검은 가시들과 더불어 한 몸을 이루는 듯한, 육감적인 힘들이 느껴지는 유 혜숙의 최근작업은,  세상에서의 우리 존재의 연약함을 새로운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의 피부로부터 삐져  나오는 가시들은 우리들의 영혼에 되돌이 킬 수 없는 고랑을 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