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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Maria Lund

 

무명들(Anonymes)

욕망…그리고 존재케 하고자 하는 욕망 ,  그것은 이름도 없고 끝 가는 곳도 없다. 정의되지 않는 이러한 무명의 욕망이 유혜숙으로 하여금 작업하게 한다.   그녀는, 내면의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최소한의 도구만을 사용하며 (연필, 종이, 캔바스와 작업실...)  작고 붉은 강낭콩을 그리기 시작했다. – 하루에 한 개의 강낭콩을 !  이 기본적이고도 보편적이며 상징적인 주제를 시작으로, 그녀의 모든 작업을 특징짓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형태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내면에 존재하는 « 또 하나의 실체 »를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문명이라는 매끈한 표면을 가진 피부아래에 감추어진 동물성과 관능성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

호기심을 자극하고, 매혹적이며, 에로틱하고  불안스러우며  때때로 거부스럽기까지 한 그녀의 작업들은 서로 같은 친밀함을 가졌으나 동시에 낯선 감각들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쉬고 있다고 굳게 믿게 되는 침묵과 부동의 형태들, 유혜숙의 이름없는 무명들은 이렇게 기이하게 동거하는 형상들의 얼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머리채와  그 외 속성에 관한 이야기

2001년, 유혜숙은 흰 캔버스 위에 등줄기 뒤로 떨어지는 긴 머리채와 파동하듯 굵게 땋아 얹은 머리채등 검은 머리카락을 주제로 일련의 대형작업들을 했다.   매혹적이고도 범접할 수 없는 극도의 관능성을 지닌 이 작품들은 마치 한 올 한 올의 머리카락에 생명을 부여하듯 검은 색의 아크릴 물감 위에서 가늘고 빛나는 흑연의 연필터치로 꿈틀거리고 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머리채, 가발, 펼쳐진 풀밭과 같은 것들은 주제가 매우 구체적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물리적 형태를 벗어난 무엇인가를 제시한다.        

이어서 연작으로 유혜숙은 실루엣의  밋밋함 위에 검정의 미묘한 변주로 인해 발생되는 움직임과  3차원의 공간을 포함한 여자의 속옷과 옷에 관한 작업들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의 분위기는, 일본 사진작가 이쉬우치 미야코의 고인이 된  모친의 옷과 액세서리들의 사진들을 통해 보여주는 감정이 배제된 일련의 작품 ‘어머니의 것’1 과  흥미로운 병행을 한다.

 

무명들

이 때부터 그녀가 탐구하기를 멈춘 적이 없는 옷과 천은 유혜숙의 예술세계에서 필요 불가결한 주제가 되었다:  종종, 옷이 제2의 피부로 간주된다면,작가는 곧 바로 ‘피부를 입는 것’ 에 관심을 갖는다. 다시 말해 의복으로서의  피부인 융털로 된 천과 모피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 중 하나는 거대한 외투가, 시선과 터치  사이의 상호 교감 안에서 감지되는 열기와 에로티즘 그리고 동물성을  드러내 보이며  그 아늑한 내부를  관객들을  향해  뒤집어  보이고  있다.

때로는 정체 확인이 가능한 옷 대신에, 일종의 거대한 솜털핵심체 같은  유기물형태가  초대형크기(300x200cm)의  캔버스  중심을 장악한다.

이 검은 덩어리 속 에서는 수 없이 많은 연필선들이 관능의 토폴로지 안에 움푹한 골과 틈 그리고 능선을 지닌 표면을 창조해 내고 있다. 어쩌면 하나의 육체를,  포옹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호인가  은폐인가 ?  깊은 주름을 지으며 떨어지는 동물의 털로 된 <<장막>>커튼들로 표현되는 작품들에 이러한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우리는 그것이 거대한 짐승의 가죽인지,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세계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들에 모노크롬의 전통은 흑암의 표면위에 움직임을 탄생시키기 위해 가공할 에너지를 가진 흑연의 터치를 사용함으로써 빛의 파편들을 모으고 밀어내는 작업으로 재현되었다. 또한 무한의 개념도 유입되었는데, 왜냐하면 이 작품들은 잘 구성된 병렬식 단위의 객체들이 무한대의 프리즈를 형성해 나가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제시된 동물성이 곰의 귀와  솔방울 모자가 달린 외투를 그린 최근 작품들에서는 아주 직접적이면서  유머스러움을 담고 등장한다. 아동스러움과 동시에 관능을 지닌 이 옷은, 가느다란 연필 선이 삼차원의 공간에 신체를 부여하는 검은 표면들 위에서 표현되는 다양한 터치들에 의해 풍경화가 되기도 한다.

 

초기 작업부터, 정의 할 수 없는 욕망에  의해 부추겨져 온 유혜숙은, 직관과 직감에 의해 이끌려져 왔다. 지난15년간, 그녀는 생각의 연합에 의하여, 한 주제가 그 다음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전개되어 나아가는 작품들을 창작해 왔다.

고도로 숙달된 테크닉과  엄격성을 갖춘 그녀의 자유스러운 정신은, 그녀 자신이 재료와의 접촉에서, 빈 공간에 대한 두려움 없이 형태와 주제를 낳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그녀의 ‘무명들’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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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andra S. Phillips in “ischiuchi miyako mother’s 2000-2005 : traces of the future”, The Japan Foundation, Tankosha,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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