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Yoo Hye-Sook

 

생성(Becoming)

 

 

그리고 싶은 욕망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찾지 못한 적이 있다. 그 시절 나는 달랑 연필 한 자루와 전신 크기의 흰 종이만 가지고 척도를 바꾸어 작은 사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기(drawing)는 상상하고 꿈꾸는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내게는 가장 정직하고 직설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나에게 그리기란 대상이 내게 말하는 걸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대상에게 좀 더 다가서기 위해, 좀 더 잘 듣기 위해, 반복해서 그리고 또 그린다. 어쩌면 이 연속적인 행위는 내면의 시선과 대상의 결정적인 조우를 기다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반복해서 한 단어를 중얼거리다 보면 음운이 생소해지는 경험처럼, 이런 방식의 그리기(drawing)는 대상이 갖는 의미를 색다르게 깨우치게 만드는, 화가로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화가로서의 나의 내면과 대상의 만남은 시간과 함께 회화라는 고유한 공간을 만든다. 대상을 통해 또 다른 나을 보게 만들고, 외부 세계와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주는 곳이다. 모든 일은 타자가 나의 세계에 침입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난다. 나는, 대상이 내게 오도록 내버려두듯, 대상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또 다른 대상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그것들에 투영되어 드러나는 나의 내면이 회화로서 어떻게 되어지는지(becoming) 보고 싶은 호기심과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